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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가 미술을 대중화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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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민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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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size>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사람은 피카소나 고흐의 그림을 떠올리고, 어떤 사람은 벽지와 구별이 되지 않는 추상화 앞에서 난처했던 경험, 또는 중·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준비물을 챙겨가지 않아서 혼이 났던 일 등을 생각한다.

사실 미술과 인터넷은 아주 친밀한 관계처럼 선전돼 왔다. 컴퓨터를 모르는‘기계치’들도 인터넷에 박물관과 미술관이 무척 많이 연결돼 있다는 것쯤은 안다. 클릭만 하면 루브르 박물관이든 호암미술관이든 연결이 된다는 것도 안다. 시간과 돈을 써가며 미술관에 직접 가지 않아도 모나리자를 볼 수 있고, 겸재의 산수화도 감상할 수 있는 꿈같은 곳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인터넷이다. 그래서 누구나 안방에서 명화의 감동을 느낄 수 있고 인터넷이 미술을 대중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인터넷과 미술의 결합은 과연 행복한 것일까. 모나리자를 직접 보는 것과 컴퓨터 모니터로 보는 것(혹은 프린트해서 보는 것) 사이의 차이는 말 그대로 크기의 문제일 뿐인가. 환기의 추상화 앞에서는 것과 그것을 손바닥만한 크기의 화면으로 보는 것 사이에 그 같은 차이밖에 없을까. 컴퓨터 기술이 발전해 더 뛰어난 해상도와 더 빠른 속도를 얻게 된다면 그만큼 감동도 커지게 될까.

미술 작품은 미술관이나 화랑에만 있는 것, 고상한 취미를 가진 몇몇 사람들만이 누리는 값비싼 예술품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미술을 장소의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알타미라의 동굴벽화로부터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미술이 미술다움으로 남아 있는 핵심을 한 가지 뽑아낸다면, 그것은 바로‘보는 방법’으로서의 미술이다. 각 시대와 문화에 맞게 미술은 다양한 이미지들을 보고 해석하고 새롭게 읽어내는 방식을 계발함으로써 인간의 감성과 인식능력을 발전시켜 왔다.

웹 아트는 관객이 적극 참여해야 성공

어떻게든 인터넷에 접속되지 않으면 현실에서 낙오할 것이라는 공포는 여러 가지 오해를 낳아온 것이 사실이다. 미술영역에서의 최초의 오해는 기존의 회화나 설치미술 작품에 인터넷 주소를 달아 올려놓은 것을 곧 사이버 공간에서의 미술로 간주하는 것이다. 사실상 그것은 정보전달 이상의 의미가 없다. 물론 한국의 미술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외국에 알리기 위해 인터넷보다 더 효과적인 매체도 없다. 그러나 기술자에게 돈을 주고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들어놓은 작가들 대부분이 정작 필요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미술평론가 김진송씨는“이는 인터넷 미술이 아니라 그림을 팔기 위한 사기”라고 한 신문과 인터뷰에서 혹평한다.‘언니네 사진관’이나‘사이버 인사동’이 눈길을 끄는 것도 일단 이들이 단순한 정보제공이 아닌‘인터넷 아트’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플래쉬 애니메이션 전문가 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의 이제금씨는“가상공간을 표현의 장으로 삼아 인터넷 안에서만 생산되고 유통되는 영상과 소리의 이미지만이 웹아트”라면서“인터넷에 적합한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컴퓨터로 만든 이미지가 모두 인터넷 아트는 아니다. 맥루한이 말했듯‘새로운 미디어는 새로운 메시지’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가 인터넷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가 웹아트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웹아트 중에는 마우스를 클릭 하면 화면이 움직이거나 변하는 경우가 많은데‘블라인드 사운드’에 링크된‘사이버 걸스’는 윈도우 화면이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새로운 형식을 보여준다.

웹 아트 혹은 인터넷 아트의 또 다른 특징은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의미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웹 아트를‘대화형 예술’이라고 한다.‘블라인드 사운드’에 들어가면 애니메이션('Grey Area')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이용자 마음대로 줄거리를 바꿀 수 있고, 장르도 게임 혹은 이야기로 선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웹 아트의 가장 큰 특징은 인터넷이 그렇듯 상상과 표현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웹 아트는 흔히 무정부적이고 저항적인 속성을 갖게 된다. 화상의 비위에 맞춰 '벽지 그림'을 그릴 필요도 없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웹 아트에 링크 된 작가들의 작품 중에는 정치-사회-종교에 대한 조롱과 비판은 물론이고 극단적인 성 묘사, 잔혹한 신체 훼손 등을 소재로 한 것이 많다. 인체구조의 기관별 해체와 결합을 소재로 한 비전문가들의 예술 창작실로 알려진‘피바다 학생전문 공작실’(www.c2k.net)이 대표적인 사이트로‘임산부와 노약자는 피해야 할’이미지들로 가득하다. 리얼리즘을 가장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매체는 인터넷이다. 긴장된 내용을 가장 빨리 대중에게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한계를 허무는 신세계”

이제금씨는 웹 아트가 직접 대중의 검증을 받는다는 점을 중시한다. 그는“그림이나 조각처럼 물질로 만들어진 미술은 상품이다. 웹 아트는 미술의 개념을 바꿔놓을 수 있다. 인터넷이란 기술적 발전이 아니라 표현 언어 자체가 변화하는 새로운 문화적 지형이다. 작가들은 여기에 맞는 미술행위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인터넷의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터넷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는 그저 목표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웹 아트에 대한 태도는 네티즌보다 미술관계자들이 더 보수적이다. ‘푸른 사람들’(www.blupers.com)과‘블라인드 사운드’(www.bd.co.kr)‘피바다 학생전문 공작실’ 등이 있고 몇몇 미술관련 사이트에서 웹 아티스트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많은 웹 아트 살롱전이 열리고 있는 외국에 비하면 양에서 비교가 안된다. 우리로서는 뉴욕현대미술관이 디지털 콘텐츠를 작품으로 사들이고 있다는 사실도 신기할 따름이다.

더구나 기술의 발전이 예술창작에 감흥을 주는 것을 못마땅하게 보는 풍조나 컴퓨터아트가 그래픽디자인이나 광고 등 상업적 목적에 이끌린다는 오해는 회화의 신화를 유지하려는 작가들에게 좋은 핑계거리가 되기도 한다. 웹 아티스트들은 미술은 사회의 변화에서 가장 늦게 간다고 탄식하면서도 미래를 낙관한다. 한 웹 아트 작가는“언제까지 화랑 같은 아날로그 공간이 살아남겠느냐”고 야유한다.

이렇게 본다면‘미술의 위기’를 말하는 우리 시대야말로 미술이 가장 필요한 시대다.
이미지를 읽어내는 것을 미술의 핵심이라고 보면, 우리 시대는 이미지를 읽어내는 연습을 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살펴보면 우리 눈이 닿는 곳이면 어디에나 미술은 있다. 텔레비전 비디오 영화 만화 광고 사진 도시공간 등등 우리가 보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미술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미술이‘터미네이터’같은 괴물을 만들어내지 않을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웹 아티스트들은 여전히 인간의 조건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며 어쩌면 인간의 미래를 가장 근거리에서 내다보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예술가’의 고전적 의미에 누구보다도 가까이 있는지 모른다.

(ICQ :Click MSN : minpd @ 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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