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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물’이 다른 ‘귀족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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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민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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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쓴 <인터넷은 철저한 계급사회>와 관점이 연장선상입니다. 요새 귀족마케팅이 뜬다죠? 귀족마케팅에 대해 공부하는 클럽도 있더군요.


‘노는 물’이 다른 ‘귀족 마케팅’

광주에서 사업하는 한부부는 얼마 전 모임에 나갔다가‘오뜨’라는 잡지를 한 권 얻었다. 다른 회원의 부인이 볼만한 책 이라는 말과 함께 건낸 책이었다. 나중에 부인으로부터 ‘오뜨’가 상류층의 멤버십 잡지라는 설명을 듣고 그는“은근히 무시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면서“그래도 다시 한번 들춰보게 되더라”고 말했다.

소위 상류층을 위한 귀족 잡지로는 현재‘오뜨’(www.haute.co.kr)외에도‘네이버’(www.ineighbor.co.kr)‘노블레스’(www.noblesse.com) 등 몇 가지가 더 있다. 위의 3종을 합친 발행 부수만도 10만이 훨씬 넘는다. 벤츠의‘메르세데스’처럼 자사의 고객을 주 대상으로 한 잡지들까지 포함하면 그들 스스로 자임하는‘A클래스를 위한 생활문화지’는 10여종이 넘는다. 이런 잡지들의 특징은 우선 보통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호텔피트니스 클럽회원, 비행기의 비즈니스 클래스 이상, 디자이너 부티크 손님, 은행의 VIP, 특정 백화점의 프레스티지 손님 등에게 무료로 배포된다. 이상의 조건에 들지 않고 잡지를 보려면 연 5만원 남짓한 정기구독료를 내야 한다.

국내 최대 L백화점도 왕따시킨 ‘귀족 마케팅’

국내 최대의 매출을 올리지만 뜨내기손님들이 많다는 이유로 L 백화점이 여기서 제외된 것도 이들의 전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위 상류층을 위한 잡지는 중산층과 차별화 되고 싶어하는 계층의 욕망을 반영한다. 90년대에 우리 경제를 팽창시킨 거품 덕분에 이전에 부를 상징하던 것들 예컨대 자동차, 집, 여행, 미식에 대한 기호, 신용카드 등은 웬만한 중산층들이 다 가져가 버렸다. 상류층은 가짜 상류들의 분에 넘치는 소비를 비난하며 스스로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이들을 마케팅 대상으로 한 업체라면 감히 중산층이 바라볼 수 없는 가격에 요란하지 않으면서 그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새로운 어떤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외제 명품 소개·성형수술 등 정보제공 이들 잡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사회적-경제적으로 성공한 상류층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상류층에게 무엇인가 팔 것이 있는 사람들이다. 전자로 기업 경영자나 재벌2세, 의사, 변호사 등을 꼽을 수 있다면 후자로는 연예인을 포함한 예술가와 디자이너 등이 있다.
‘노는 물’이 다른 일반 사람들과 섞이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귀족’들은 사이버 공간에서도 따로 모인다. 그리고 이들 부유층 네티즌을 겨냥한‘귀족 마케팅’은 사이버 공간에까지 확산되었다.

호텔신라가 운영하는‘노블리안’(www.noblian.com)은 골프 미용 패션 요리 증권 쇼핑 등 최신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고급제품을 취급하는 쇼핑몰을 갖추고 있다. ‘HAPPY BED TIME을 위하여’라는 이름으로 소개한 제품을 살펴보니, ‘베란다나 정원을 산책할 때 신는 실내 슬리퍼’가 54만원, 잠자기 전 액세서리를 빼서 보관하는 크리스털 주얼 박스가 21만2000원이다.‘AUTO’란에는 볼보, 캐딜락, 벤츠, BMW, 크라이슬러 등 외제 승용차들만 소개하였다.
사이트 내 사교클럽‘YNC’(Young Noblian Club) 는 가입비 30만원에 파티 비용은 별도. 회원자격은‘직업을 통한 사회 기여도가 높은 차세대 리더’‘파티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고급문화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은 사람’등으로 밝히고 있다.
이밖에 고액 연봉을 받는 전문직업인 회원이 대부분인 ‘클럽 프렌즈’ (www.clubfriends.co.kr) 와 상류층간 만남을 주선하는 ‘노블커플’ (www.noblecouple.com) 등의 사이트들이 ‘평범하지 않은’ 회원들에게 ‘귀족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터넷 사회에서도 대접받는 ‘신흥귀족’들. 사이버 세상도 결코 평등한 곳이 아니다.

디자이너들의 오뜨 꾸뛰르, 잘 나가는 미니멀리즘 계열의 그림들, 그리고 일목요연하게 그림 값이 매겨진 외국 예술가의 작품 등이 지면을 장식하고 경매와 컬렉션에 대한 정보도 자주 등장한다. 광고의 절대량이 수입품으로 채워져 있고 책의 정보가 이들 광고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이들의 중요한 특징이다. 대개 외국 지사인 광고주들은 경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이들이 국산 요구르트의 광고를 빼달라고 요구했다가 이것이 요구르트 중에서 최고급품이라는 설명을 듣고 한발 물러섰다는 말은 차라리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다. 세계적 명품으로 알려진 P사의 한국 지사에서는“우리 제품이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는 것을 막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한다. 샤넬, 프라다, 헤르메스, 필립 스탁, 레녹스 같은 명품들에 얽힌 이야기와 상품소개 외에 다이아몬드, 해외의 리조트에서 즐기는 폴로나 요트, 성형수술 등이 이런 잡지들이 즐겨 다루는 내용이다.

얼마전 부터는 소비계층이 상당히 세분화하고 있으며 이런 점을 착안해 업계는 상위 5% 에 있는 상류층의 구매력은 경제가 좋든 나쁘든 상관없다는 점을 노린다. 일종의 귀족마케팅이 자리잡아 가는 셈이다. 그러나‘이들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상류층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신 있게‘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한다. 상류잡지에 속하는 한 기자는“일종의 특권의식에서 책을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상류층이라는 말은 혈통이나 직업, 그리고 그들의 윤리의식 등과 아무 상관없이 전적으로 소비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사람들을 의미할 뿐이다.

“한국에 진정한 상류사회는 있는가”

한 방송 프로듀서는“서민들이 이런 문제에 쉽게 흥분하기 때문에 상류층을 자꾸 다룬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방송이 나간 뒤 담당자에 대한 격려가 아니라 부자들 돈 좀 쓰게 내버려두라는 의견이 많이 접수되는 것도 지난 구제금융 이후 나타난 이상증후다. 상류층 소비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작한 바 있는 SBS-TV의 윤상섭 프로듀서는“상류문화의 실체를 찾는데에 한계를 느껴 소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돈 잘 쓰는 부자들이라는 의미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상류층은 누구이며, 나아 가 그런 존재들이 있기는 한 것일까. 한 잡지 관계자는“피트니스 클럽 회원들이라면 룸살롱에서 돈 쓰는 졸부들과는 다르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삶의 형식에 대해 생각하는 계층이라는 의미다. 많은 사회학자들은 상류의 기준으로 도덕적 책임감과 세련된 문화적 취향을 꼽는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에서 상류층을 찾는 일은 상당히 곤란하다. 일제 점령기와 개발독재로 이어진 현대사를 통 해 이런 집단은 대개 몰락하고 졸부들과 부패 한 권력집단만 남았기 때문이다.‘네이버’등에 작품을 소개한 사진작가 배병우씨는“그나마 전문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상류로 불릴 만한 자격이 있지 않는가”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빌게이츠가 현대적 상류층의 모범으로 꼽히는 예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잡지 관계자들도 기호가 분명한 전문가 집단이 새로운 상류가 될 것이라는 데에 대개 동의하면서 이들의 경제행위에 우리 사회가 의존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말한다.

상류사회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에피소드는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구명보트를 거부하고 죽은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빈부의 격차가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요즘, 한국의 상류층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노블레스 오블리제”(귀족계급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의 의미를 이들은 과연 체현(體現)하고 있는 것일까.

2002년 7월 iweekly 111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ICQ :Click MSN : minpd @ 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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