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 날개
우측 날개

가요계의 '무뇌아' 적인 비극

작성자 정보

  • 작성자 민명기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아이비즈넷 컬럼리스트 이성진씨와 가수 신해철씨가 웹에서 논쟁을 일으켰다.
문제의 발단은 신해철씨가 매일 새벽 2시~3시까지 진행하는‘고스트 스테이션’(http://ghoststation.co.kr)에서 소리바다는 가요계와 나아가 음반 산업 발전의 저해요인으로써 폐쇄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촉발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입장에 대한 반박과 반박으로 진지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가요계의‘무뇌아’적인 병폐를 돌이켜보자.

파파야, 클릭비, 샤크라, 티티마, 악동클럽, 피플크루, 클레오, O-24, 보보.

1~2년 전만 해도 한창 가요인기 순위를 누비던 가수(그룹)들이다. 지금 이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알기란 꽤 어렵다. 지금은 J T L, 슈가를 비롯해 K-POP, 비, 신화 등 루키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스포츠신문이나 연예잡지에 연일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1년 뒤, 아니 6개월 뒤 이중 몇 그룹이나 살아남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1년을 버티지 못하는 “10대의 우상”

우리나라 가수 가운데 1년을 넘기면 일단 성공한 축에 속한다. 한때 방송국을 누비며 한창 잘 나가던 이들도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하는 곳이 가요계다. 그나마 몇 번 방송이라도 타고, 잠깐이지만 이름이 알려졌다면 다행이다.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반짝’도 못한 채 그냥 스러지고 만다.
이렇게 가수들이 하루살이로 전락하는 이유는? 그건 가수들이 스타매니저시스템에 의해 철저하게 만들어질 뿐 자생력이 없다는 데 있다. 얼굴 잘 생기고 춤 좀 추는 애들(?)이 모여 만들어진 팀,“텔레비전에 몇 번 나가면 성공이 가능하다”는 안일한 생각이 가수 단명시대를 이끌고 있다.

이들은 밑천이 바닥나 더 이상 보여줄 게 없으면 한순간에‘날개 잃은 천사’가 되고 마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들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오르려는 또 다른 이들이 끊임없이 치고 올라오기 때문이다. 또 팬들의 환호에 취해 섣부른 스타의식을 발휘하며 기획사를 상대로 더 많은 요구를 할 때 기획사는 열심히 주판알을 두드린다. 그리고 또 다른 새 팀을 만드는 경우와 기존 팀에 더 많은 지분을 줄 때와의 손익을 따진 뒤 결단을 내린다. 가수지망생은 무궁무진하니까. 이른바 노비문서라는 3~5년의 가수계약서가 이들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획사, 방송사 관계자등 가요 생산자들은 수명단축의 이유를 팬들에게 돌리기도 한다.

라인기획 김광한 상무는“가수들의 수명이 짧은 이유는 가창력, 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0대 소비층들이 계속 새로움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급이 수요량을 훨씬 초과하기 때문에 단명가수란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국내에 1백여개가 넘는 가요 기획사에는 하루에 1~2개에서 수십개씩의 데모테이프가 늘 쇄도한다. 최근엔 전문녹음실에서 믹싱까지 끝낸 CD로 가져오는 지망생도 많다. 이 경우 데모CD 제작비만 몇백만원 든다. 오디션을 받겠다고 직접 찾아오는 이도 많다.
요즘엔 연령층이 점점 낮아져 중학교 2~3학년에서 초등학생들까지 기획사 사무실을 기웃거리고 있다. 대형 기획사들은 음악디렉터를 별도로 두고 데모테이프만을 전문으로 듣게 하기도 하지만‘시간낭비’라는 게 기획사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평이다. 데모테이프를 들고 다닌다는 자체가 이미 여러 곳을 전전했다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수억원 투자해도‘대박’만 터지면

기획사들은 오는 이들을 만나기 보단 찾아 나서는 쪽을 선호한다. 최근까지 댄스가수가 되는 방법으로 널리 알려졌던 장소가 나이트클럽이었다. 개성 있는 외모와 빼어난 춤 실력을 갖춘 이를 선발하기 위해 매니저들이 직접 나이트클럽을 방문하고 가수지망생들은 또 매니저들이 자주 들른다는 곳 을 수소문해 찾아간다. 자연스럽게 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얼마전까지 이태원이 주무대였다. 양현석, 현진영, 룰라, 디제이 덕 등이 이태원 ‘문 워크’ 출신이다. 최근엔 힐탑 호텔 지하‘아발론’등 강남지역이 각광 받고 있다. 하지만 일부 매니저들은 이런 나이트 춤꾼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예당음향의 한 매니저는“나이트클럽의 경우 신분을 알 수 없어 위험부담이 많다. 힘든 가수활동을 견뎌낼려면‘끼’외에도 성실성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노는 분위기에만 젖어 있는 사람일 경우 통제가 어렵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가수가 되는 가장 흔한 루트는 역시 연줄을 통한 소개에 의해서다. 일단 가수지망생을 뽑고 나면 1년 정도의 수습기간을 갖고 기초발성부터 가르치는 이른바‘스타 만들기’가 시작되고 음반작업이 진행된다. 음반을 만들 때 기획사는 음반사로부터 보통 음반 한장당 1천5백원 정도 받는다. 또다른 형태로, 선급금 형식의‘마이킹’을 받는데 적게는 3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까지 받는다. 음반 제작비용은 싸게는 몇천 만원에서 몇억 원까지 천차만별이지만 이‘마이킹’가격을 지나치게 초과해서는 안되는 건 당연하다.

‘스타 만들기’의 전형적인 작품 H.O.T

10대 5명으로 구성된 이 댄스그룹은 데뷔 1백여일 만에 1백만장에 육박하는 앨범을 판매하는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H.O.T는 철저하게 만들어진 스타다. 95년 가을 가수 이수만이 설립한 SM기획은 새로운 그룹을 구상했다. 10대들의 왕성한 음반 구매력을 감안해 10대팀을 생각했다. 먼저공개오디션, 헌팅, 소개 등 모든 경로를 총동원했다. 1차로 문희준, 강타, 이재원 등 고교생 3명을 뽑았고 장우혁과 재미교포 토니 안을 추가해 5명을 채웠다. 다음은 교육. 춤은 호텔무용수 출신의 박재준, 노래는 작곡가 유영진, 의상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코디네이터였던 고경민이 맡았다. 춤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게, 노래는 10대들의 정서에 맞게, 의상은 힙합풍에 유아적 이미지를 결합시켰다.

그리고 각각의 고유 캐릭터를 만들었다. 남성(강타), 미소년(이재원), 반항(장우혁), 지성(토니 안), 유머(문희준)라는 이미지를 덧입혔고 초록, 파랑, 주황, 노랑, 빨강 등 고유색도 줬다. 그리고 10대의 관심거리인 학교폭력을 다룬 갱스터 랩 <전사의 후예>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웠다. 사회적 이슈와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고 서태지 이후 뚜렷한 10대 우상이 없던 시기에 5명의 10대가 무대에서 종횡무진 하는 장면은 쇼프로로선 만점이었기에 이들은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할 수 있었고‘뜨기’시작했다. 그런데 이 곡이 표절 시비에 휘말리자 H.O.T는 아무런 해명도 없이 슬그머니 <전사의 후예>를 접고 <캔디>를 들고 나왔다. 헐렁한 운동복과 털모자, 큰 벙어리장갑 등을 덮어쓰고 나와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앙증맞은 애기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해체되고 그때 당시의 후광으로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은 10대 우상으로 우뚝 솟아 ‘서태지와 아이들’과 비유되기도 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의 경우 서태지 본인이 팀을 조직하고 곡을 만들고 자신들의 이미지를 창출한 것과 비교하면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다. 이들은 한낱 만들어진 부속인 일 뿐 개체로서는 존립이 불가능한 진짜 우상(偶像)일 뿐이다. 시험관 아기나 복제인간 같은 이들의 재롱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팔에 끈이 달린 꼭두각시 또는 무뇌아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대체인력 무궁무진. 한물 가면 회복 불능

아무리 뜨는 가수라도 스캔들이나 표절시비 등에 휘말리면 기획사는 활동을 중단시킨다. 기획사는 이를 대비해 항상 스페어 팀을 준비해놓고 있다.
언제든지 대체가 가능한 것이다. 일단 한물 간 가수가 재기에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실력 없이 만들어진 스타일 경우 그 확률은 0%에 가깝다. 음악적 자질이 있다면 제작자나 기획자로 나서기도 하지만 그런 능력이 없으면 주변만 빙빙 돌 뿐‘이너 서클’로 들어오지 못하는 불쌍한 신세가 되고 만다. 그렇다고 가수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다. 마약과도 같은 무대를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외모가 중요한 요소인 여자가수들의 경우 그 비참함은 더하다.

이런 현상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10대들은 누구나 연예인을 꿈꾸고 자신의 실력과는 상관없이 문을 두드린다. 그들의 생각은 간단하다.“쟤는 나보다 못한데 떴다”다. 실력이 아닌 요행수가 점점 퍼 져나가고, 그러니 인기를 못 끌 때도 자신의 실력을 탓하기 보단 운 때를 탓하게 마련이다.
여기에 또 하나 립싱크 문화가 우리 가요계를 더욱 파행적으로 만든다. 립싱크가 없었다면 단명가수도 없었을 것이다. 입만 벙긋거릴 수밖에 없는 그들이 가련하기도 하지만 이런 립싱크 문화는 우리 사회에 거짓문화를 퍼뜨리는 선구자 구실을 한다. 네티즌 김은옥(27)씨는“어느 누구나 무대에 서서 립싱크 하면서 노래한다면 관객들은 그 가수의 음악을 듣기보다는 외모만 멀끄러미 봐야한다. 한마디로 관객들을 조롱하는 것이다”
노래도 부르지 않는데 헤드마이크를 쓴 이유는 도대체 뭔지. 립싱크를 한다는 건지, 안 한다는 건지.“눈 가리고 아웅”식의 허위와 위선에 우린 어느새 익숙해져 버리고 말았다. 가요계엔 이런‘허리케인 블루’가 넘쳐난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가수는 음반을 내면 곧바로 라이브에 들어간다. 팬들은 음반과 뮤직비디오를 통해 노래를 즐기고 라이브무대에서 그들과 만난다. 실전경험을 통해 배출되는 마이클 잭슨, 마돈나,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을 우리 가요계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립싱크 사라져야 진정한 스타 탄생

대중음악평론가들은 우리 가요계의 이런 파행상의 해결책을 결국 라이브무대 활성화에서 찾는다. 라이브무대가 활성화되면 자연 실력 있는 가수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장르의 다양화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립싱크 문화에 대한 배격바람이 거세지면서 라이브무대가 새롭게 각광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전 혜성처럼 등장한 소냐, 이수영, 오현란, 박정현 등이 다른 여자가수들과는 달리 상당한 가창력을 지녔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앞으로 우리 가요계에서 언제쯤 가수다운 가수가 나오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끝난다, 끝난다”하면서도 텔레비전을 장악하고 있는 게 댄스뮤직이고, 만들어진 스타들이었기 때문이다. 가수는 가수다워야 한다. 노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가수는 아무나 하는 건 아니니까. 무대는 노래방이 아니다.

(ICQ :Click MSN : minpd @ freechal.com)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알려드립니다 ^0^


MY ViEW


최근글


새댓글


  •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