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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보는 시각을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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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민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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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지니스와 다소 무관하게 최근 인터넷에서 태풍의 핵으로 떠오른 만화 사태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size>“9의 예술이라는 만화가 아직도 평가절하 되는 경향이 비일비재하여 씁쓸하다. 어떤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분명 다르다. 이번 MBC‘느낌표!’에서 보여준 모습은 분명‘특정 문화(만화)’에 대한 경시이며, 이것은 무지의 소산이거나 편협함의 결과다. 그네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만화의 무궁함과 깊이를 말이다.”

한동안 잠잠하던‘인터넷 기상도’가 방송사의 폭력성으로 인해 먹구름과 함께‘저기압’으로 변하면서, 만화 폄하에 대해 만화가 지망생 하청래(32)씨 말이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달 20일 방송된 MBC 정보오락프로그램‘느낌표!’(www.imbc.com/tv/ent/big5/index.html)의‘책책책, 책을 읽읍시다’길거리 인터뷰에서“어떤 책을 즐겨보냐”는 진행자 김용만, 유재석의 질문에 일부 시민들이“만화를 즐겨본다”고 대답할 때마다 진행자들이 비웃었던 장면과 연출진의 의도적인 시청자 웃음 삽입과 함께 인터넷으로 다시 보기에서는 문제가 된 부분을 교묘하게 편집해 서비스중이다. 이와 관련 만화를 좋아하는‘일부’가 아닌‘문화 편식’을 우려하는‘국민’이 성내고 있는 것이다.

만화방에는 냄새가 있다. 손때 묻은 만화책에서 풍기는 약간 퀴퀴한 냄새는 호야, 맹구, 독고탁, 최고봉, 성일, 각시탈이 활개쳤던 70년대 중반이나 오혜성, 이민, 강백호, 짱구, 한비광이 주름잡는 지금이나 거의 똑같다. 검은 고무줄이 달린 책장, 1백원에 5개씩 나눠주던 하얀 쇳조각표, 주황색 얼음주머니 아래팔을 깊숙이 뻗어 만화 2권을 포기하고 꺼내먹던 하드, 코를 훌쩍이고 만화를 보다 키득키득 거리던 고만고만한 아이들, “00 야” 하고 야단을 치며 손을 잡아끌던 엄마도 이젠 만화방에 없다. 푹신한 소파, 라면, 커피, 김밥, 그리고 뽀얀 담배연기를 내뿜는 어른들, 모든 게 달라졌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그 냄새가 벌름거리는 콧속으로 파고들 때 문득 우린 만화와 함께 한 추억과 낭만 한 자락을 폴폴 날리는 그 냄새 속에서 부여잡는다. 누나 심부름으로 쪽지에 적어준 엄희자 만화 한 보따리에 심부름 값 대신으로 독고탁 만화 몇 권을 진보라색 나일론 보자기에 찔러 넣고, 집으로 향하던 그 밤 그 골목의 뿌듯한 포만감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까지가 그렇게 만화를 보고자란 "만화 1세대"다.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 십원짜리 몇 닢으로 상상의 나래를 활 짝 펴게 해줬던 만화는 유년의 뜰을 거닐 때마다 매번 나타난다. 번데기와 뽑기 대신 만화를 집어들은 그 아이들과 함께 우리나라 만화는 자라났다. 해마다 5월 "쥐잡는 날" 위기를 넘겨가며 잡초처럼, 고아처럼.

‘문화의 사생아’취급을 받는 만화는 어디에도 제대로 집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화산업 종사자들과 전문가, 그리고 문화관광부(www.mct.go.kr) 문화산업정책과가 2002년도 문화산업 진흥 연차 보고서 등을 종합해 주먹구구식으로 합산해 보자. 지난해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www.kpec.or.kr)에 사전심의를 의뢰한 국내만화는 전체 심의권수 9,234권 중 52%인 4,774권이었으며, 결정권수는 전체 결정권수의 34%인 449권으로 지난 2000년 심의권수 5,004권, 결정권수 456권으로부터 계속 감소하고 있다. 이를 1년 매출액으로 다시 구분하면 대본소 용 5백억(6천여권), 만화잡지 8백95억(광고비 포함 9백50억), 단행본 1백억, 스포츠신문 연재 단행본 50억, 그리고 불법 유통(하루 약 1백50권) 3백억, 기타 출판용을 포함해 총 출판만화 4천억, 애니메이션 7천억, 팬시. 캐릭터 5천억, 관련 음반 2천억, 컴퓨터게임 4천 억, 테마파크 3천억 등 모두 3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시장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달려 있다.

그러나 지난 97년 만화가 일진회의 교과서가 되었다며 만화 단속에 검찰이 발벗고 나서 언론과 당국이‘마녀사냥’식으로 만화를 몰아붙여 학부모들에게 만화는 마약보다 더 무서운 유해매체로 인식시키고 말았다. 심지어 만화 1세대 학부모들마저. 단속이 심화되면서 대본소, 대여점, 서점 등은 경찰의 싹쓸이 바람에 책장 한 부분이 휑하니 비어버렸고, 일부 서점은 아예 만화를 취급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할 정도였다.
뚜렷한 처벌규정이나 기준도 없는 마구잡이 단속은 엄연한 재산권 침해라는 목소리도 높았다. 연못물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된다. 뱀이 마셔서 독이 됐으니 연못 자체를 없애자는 게 당국의 논리다. 여름햇살이 강할 땐 그림자도 강한 법이다. 그런데 그림자를 그리지 말라고 하니, 햇살도 희미하게 그릴 수밖에 없는데 손발 묶은 상태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현재 심의는 청소년용에 한해 불문, 주의, 경고, 제재 등의 4등급으로 나눠지는데 문화관광부나 경찰, 검찰 등의 의뢰가 들어올 경우 한국간행물윤리 위원회에서 판단을 내린다. 성인용이라 하더라도 포르노로 분류가 되면 형법에 의해 제재를 받는다. 그래서 만화출판업자들이 먼저 간윤에 문의한다. 자기검열로 스스로를 옥죄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하청래(32)씨는“자기검열은 표현, 창작에 있어 사전, 사후 검열보다 더 무섭다. 우리나라 만화의 시나리오와 캐릭터가 약한 이유가 오랜 기간의 무수한 검열장치 때문”이라고 말했다. 만화출판사의 한 관계자는“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나올 만화는 둘리 밖에 없다. 성인만화도 너무 오래 작가적 상상력이 위축돼 소재가 좁아져 아동용 만화가 좀더 폭력, 선정적이 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사실 둘리도 원래 검열을 피하기 위해 공룡으로 탄생한 것이다. 만화에서 어린이는 어른들에게 반항해선 안 되기 때문에.

SICAF(www.sicaf.or.kr),춘천만화축제(www.caf21.org),동아·LG국제만화페스티벌(difeca.donga.com) 등 국내 만화축제가 5개나 경쟁적으로 개최되고, 삼성, 현대, 대우, 쌍용, 동양, 코오롱, 제일제당, 동원 등 웬만한 대기업들이 다 애니메이션에 뛰어들었다. 돈이 된다니까. 하지만 이의 성공은 만화산업의 인프라인 출판만화 시장의 성장이 우선돼야 하고, 무엇보다 만화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라는 토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 <아마겟돈> <붉은매> 등 출판만화 시장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렸던 만화들이 애니메이션에선 무참한 패배를 당한 이유가 그것이다.
국내에 만화관련 학과를 개설한 대학이 10곳이 넘는다.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이들이 우리만화에 어떠한 바람을 불어넣느냐에 따라 한국만화 발전의 무게가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거대군단으로 자리잡고 있는 수많은 만화 매니아들이 바로 우리 만화산업의 자산이다. 플래쉬 애니메이션 광고전문 회사 엔터미디어(enter-media.co.kr) 이제금 기획실장(26)은 “미래사회는 소프트웨어 각축장이다. 만화, 영화는 그 소프트웨어를 채우는 콘텐츠웨어(Content Ware)다. 결국 문화상품의 승부수가 여기에서 결정 난다”면서“그리고 또 하나. 만화는 산업만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기는 상업예술이다” 고 말한다.

허영만의 <카멜레온의 시> <고독한 기타맨>을 보면 머리에 쥐가 나고, 이현세의 <남벌>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를 보면 가슴이 요동치고(국수주의이긴 하지만), 허영만의 <오!한강>, 김혜린의 <북해의 별>은 80년대 운동권의 필독서였고, 백성민의 <토끼>, 이두호의 <바람소리>에선 백번의 세미나보다 더 적확하게‘민중’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고, 이희재의 <간판스타> <새벽길>을 보면 가슴이 아파온다. 그리고 강경옥의 <별빛 속에>서 아빠와 함께 언덕에 앉아 바라보던 검은 밤하늘별은 알퐁스 도데의 그‘별’과는 비교가 안 된다. 또 황미나의 <안녕, 미스터 블랙> <이오니아의 푸른 별>을 보고 얼마나 많은 소녀들이 그 맑은 눈에 눈물을 글썽였을까? 한희작, 허무영, 양영순은 또 얼마나 눈에 불을 켜고 보게 되는가?
오늘은 오랫동안 잊었던 바벨탑에 들어가 로뎀, 로프로스, 포세이돈을 만나고 싶고, 박포 도장에서 하리케인과 최도천도 만나고 싶고, 무당거미도 만나고 싶고, 일지매도 만나고 싶고, 혜성이와 엄지도 만나고 싶다.

(ICQ :Click MSN : minpd@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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