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 스페이스전

현대미술은 현대문명이 뿜어내는 독을 치유하는 사색과 명상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


28일부터 5월 18일까지 서울 순화동 호암갤러리에서 열리는 ‘마인드 스페이스(mind space)’전은 미술이 지닌 ‘정신성’을 찾아 나선 ‘마음으로의 여행’이다. 영적인 작품 세계로 이름 난 국내외 초청 작가 8명이 인간 내면을 바라보는 관조와 집중의 길로 관람객을 이끈다.


삼성미술관(관장 홍라희)과 중앙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전시회는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교감이 특히 중요하다. 작가의 마음과 보는 이의 마음이 만나는 체험 과정이 곧 미술 감상이 된다. 전시를 기획한 안소연 삼성미술관 수석연구원은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온 몸을 열고 작품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 결합 속에서 '마인드 스페이스'는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들머리 고즈넉한 공간에서 관람객을 맞는 이는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가 마크 로스코(1903~70)다. 직사각형 색면 두 개를 위 아래로 둔 사이에 미묘하게 번지는 선(線)이 자리한 로스코의 그림 4점이 "자, 이제 당신의 마음을 응시하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어둑한 캔버스 위로 떠오르는 선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으면 유한한 목숨과 무한한 우주가 맞닿은 공간이 열린다. 황동규 시인은 '마크 로스코의 비밀'이란 시에서 그 선을 이렇게 노래했다. "이른 봄밤 새기 전 어둡게 흔들리는 바다와/빛 막 비집고 들어오는 하늘 사이에/딱히 어떤 색깔이라 짚을 수 없는/깊고 환하고 죽음 같고 영문 모를 환생(還生)같은/저 금."

로스코의 그윽한 선을 잔상으로 남긴 눈은 애니쉬 카푸어(49)의 작품 앞에서 놀람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다. 인도 출신의 이 영국 작가는 시선을 먼 곳으로 데려가는 공(空)의 통로를 만들었다. 현실과 벽 너머의 경계 앞에 선 관람객은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어지러움을 느끼게 된다. 초월을 향한 문(門)인 셈이다.

제임스 터렐(60)의 '기다림'으로 들어가는 문은 더 멀다. 깜깜한 복도를 더듬더듬 나아가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옅은 빛 한 줌이 떠오른다. '세상이 열리던 첫 순간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어 침묵 속에 호흡을 가다듬고 기다리면 저 멀리 어른거리는 화면이 있다.

16살부터 항공기 조종을 즐긴 이 미국 작가는 "야간비행에서 맛본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작품에 담았다"고 말했다. 빛과 소리를 차단한 방에서 사람들은 한층 예민해진 감각으로 원초적인 자기 존재를 돌아본다.

터렐의 방에서 나온 관람객은 달큼한 냄새를 좇아 볼프강 라이프(53)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듣는다. "최근 너무나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은 가능한 한 흉하고 난폭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왜 아름다움을 두려워해야 하지요? 우유와 꽃가루는 태양이나 하늘처럼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벌집을 만들기 위해 꿀벌이 분비한 밀랍 덩어리로 벽을 세운 '밀랍의 방'에서 그는 자연과 인간이 한 몸임을 보여준다. 독일에서 의학을 전공했지만 인도를 자신의 영적인 고향이라 말하는 그는 밀랍을 모으는 느리고 단순한 작업으로 서구미술의 빠름과 복잡함을 거슬러 오른다.

필리핀 작가 라니 마에스트로(46)는 하늘하늘한 모기장을 여러 개 늘어놓은 '요람'으로 인생을 추억한다. 요람은 그에게 "늙어감, 부재(不在)와 죽음"을 기억하게 만드는 꿈의 공간이다. 대만 작가 리 밍웨이(39)에게 와서 그 기억은 '편지 쓰기' 로 변형됐다. 유리와 나무로 된 '꿇어앉는 방'에서 관람객들은 참선하듯 이제는 볼 수 없는 이들에게 마음의 편지를 띄운다. 그는 "무릎을 꿇는 자세의 묵상은 용서와 감사를 나타낸다"고 했다.

2층 전시장은 2명의 한국 작가, 김수자(46) 우순옥(45)씨가 위안의 공간으로 꾸몄다. 바느질 행위를 '호흡 또는 소통'이라 보는 김씨는 "이제 내 몸이 하나의 바늘이 돼서 자연이라는 넓은 천을 꿰맨다"며 '바늘 여인'이라는 비디오 작품을 선보였다.

우씨는 "'따뜻한 벽'을 통해 인간 서로간의 대화, 이해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썼다. 우씨가 만든 흰 벽에 몸을 기대면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따뜻하고 편안하다.

8명 작가가 초대한 '내 안으로의 여행'은 지금 우리에게 절박한 것이 정신적 도약과 희망임을 전하는 봄비다. 02-771-2381~2.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