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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기행2] "No problem" & "짤로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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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제목 : 하늘풍경의 인도기행 “인도로 떠나니 내가 보이네”

소제목 : ■ [하늘풍경의인도기행] "No problem" & "짤로짤로"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적응하기 시작했다.
두려움이란 단어와 기대감은 교차하며 오게 되어있다. 하늘을 나르는
비행기 안에서 초행으로 떠나는 많은 여행자들은 각자가 가는 길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설레이고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옆자리의 노신사의 배려로 창가에 앉은 후에 보게된 하늘은
류시화 시인이 글로 적었던 "하늘호수"란 단어를 연상케 했다.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듬성듬성한 구름아래로 푸른 호수가 펼쳐져있다.
낚시대를 드리우면 금방이라도 물고기가 튀어오를것만 같은 상상이 눈앞에
펼쳐져 보였다. 바다를 지나면서 그위로 구름이 겹쳐져 보이는 모습은
내겐 낚시대를 드리우는 낚시꾼의 기다림처럼 오랜 침묵의 눈길을 갖게
해주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홍콩을 경유 인도의 델리항에 도착한 시간은 인도시간
으로 PM9시경이었다. 대략 13시간의 일정으로 인도에 도착한 것이다.
후꾼한 열기를 받으며, 항공기를 내려섰을때, 매캐한 향내에 이것이 인도의
냄새인가를 생각했다. 공항은 대체로 한산했고, 공항에 벽에 그려져있는
힌두신들의 모습과 인도인들의 부산한 움직임으로 내가 인도에 도착했음을
알수 있었다.

델리공항에서 프리페어택시를 타고 파하르간지의 메인바자르(시장)로 향했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 도착한 메인바자르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다. 부쩍 많아보이는 서양인들과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한국인 여행
자들의 모습에서 이곳이 이태원 어디쯤은 아닐까 착각을 해본다.
그러나 금새 그 생각은 사라져버렸다.
이방인들을 낯설지 않게 생각하는 인도인들과 어디서 나타났는지 나와 일행
의 주변을 맴돌며 손을 벌리는 아이들과 아기를 안은 여인, 불구의 몸인
사람들과 도를 수행하는듯 수염을 기른 걸인이 손을 벌리며, 끊임없이
"할로 할로 (hello)" 외쳐댄다.

우리 일행들을 비롯해 많은 서양인들도 그들을 쉽게 외면한다.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이방인들에게 당연스레 손을 벌리는 그들의 손은
사람들에게서 동정의 대상이 아닌듯 했다. 자국 돈으론 몇푼되지 않는 돈을
재미나 귀찮음으로 1Ru(루삐,인도의 화폐단위)를 주는 정도의 의미외엔
없는듯 하다.

숙박을 잡지 못해서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모습이 더욱 인도인 들의 눈에
관심거리가 되어있다. 지나면서 힐끔거리는 그들의 눈길이 이미 바뀌어져
외국인이 되어있는 나의 모습을 확인시켜주었다.

숙소는 PASAL 호텔로 하였다. 더블룸에 비용은 160Ru로 생각외로 깨끗하며,
화장실과 천장에 선풍기 대용의 팬이 달려있다.
4층에 위치해있어 창문을 열어보니 메인바자르가 한눈에 들어와 보여 좋았다.
인도라는 곳을 너무 미개하게 본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샤워시설이나 숙박시설등이 나쁘지 않다.

다음날 메인바자르 시장과 델리시내를 돌아보았다.
이방인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이어서인지 이방인들을 전혀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는 인도 상인들과 구걸하는 아이들을 쉽게 만나게 된다.
북을 치거나 코브라를 내보이며 사진을 찍기를 권하고, 자신의 재주를
보여주므로서 돈을 원하는 꾼들이 곳곳에 있다.
재밌는건 한국인이 자주가는 식당으로 유명한 G카페를 가니 식사하는
사람들이 모두 한국인이며, 주인에게 달러환전을 물었을때 종이에
써주는 "사천칠백Ru"라는 한글 문장이 동행자보다 더 멋지다.

인도에서의 첫 식사는 스프링롤과 일종의 카레밥을 먹었다.
양고기 다진것에 군만두같은 껍데기를 씌운 스프링롤은 맛있게 먹을수
있었고, 긴 누에벌레 같은 쌀밥에 카레같은 소스를 뿌린 chukadon 은
덜익은 쌀을 먹는듯한 느낌이지만 그럭저럭 먹을만은 하다.
그러나, 소스로 인해 많은 량을 먹기엔 느끼한 맛을 준다.
더운 날씨라 인도에서 자주 볼수 있는
Lassi(우유를 발효해 요쿠르트 같은 맛이 나며, 얼음을 넣어 한컵단위로
판다)도 마셨는데, 요쿠르트와 다를바 없어서 역시 먹을만 하다.
어쩌면, 현지 적응을 너무 쉽게 하고 있지 않냐는 생각이 들정도로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

많은 인도기행과 관련한 책들을 접하게 되면 빠지지 않는 것이 인도상인들
의 "No problem"이라는 말이다. 무엇을 하든 그들은 "문제없음"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가격 흥정을 할때도 영어를 잘 못알아 들었을때도 예정된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를 주고선 항의를 받을때도 여지없이 "문제없다"는
그들의 말을 들을수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여행객들은 즐겁게 바라봐
주는것 같았다. 속임이 있다는걸 알지만 잘 흥정하면 제 가격이나 더 저렴
하게도 살수 있음을 알게되고 나면, 그들의 속임 조차 귀엽게 봐주어
버리는 것이다. 현지의 물가가 자국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자국기준의 돈의
차이는 크지 않기 때문일수도 있다.
또 능숙한 여행자가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 항의를 하며 인상을 쓰기라도
하면, 금새 눈치를 채곤 조금씩 값을 깎거나 일처리를 "문제없음"으로
종결지어주는 모습도 여행객들에겐 장난같은 느낌마저 들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른 관점에서 그들의 "문제없음"은 낙천적으로도 보이는듯 하다.
오랜 여행자들의 몇사람들은 인도의 그런점에 많은 매력을 가진듯 했다.
그들에겐 싸움이란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며, 때로 그들의 순박함을
만나게 되면, 생긋 웃을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객을 상대로 돈을 올리는 바가지를 시도해보지만,
이내 "우리가인도를간다"나 "론리플래닛"의 가이드북을 여러번 읽고온
사람들에겐 귀여운 장난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으며 그것이 자국의
욕심많은 사람들보다 훨씬 순수하게 받아들여진다.
무엇보다 신분과 부의 격차가 엄청나게 큰 인도에서 대다수 하층민들의
삶은 그들의 일상을 불행한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여행자들이
많았다. "are you happy?"라는 말에 "everybody happy"라 말하는
그들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야만하는 자국내의 자신의 일생과 비교하며,
이미 현실에 물들어 치열해진 자신보다 단지 모든것에 행복감을 느끼는
이들의 삶을 더 동경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좀더 인도를 여행하면서, 많은 여행객과 현지인들을 만나게 되면,
지금의 생각들에 대한 조금은 더 구체적인 접근이 가능하리란 생각을
해본다. 짧은 여행과 지역적인 사람들과의 대면만으론 설명하기 어렵고
이해하지 못하는 뭔가가 있으리란 생각이며, 이 여행이 끝날때쯤엔
정리를 해볼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겠는가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져본다.

델리를 떠나 다름살라로 향했다.
다름살라는 델리에서 15시간 정도가 걸린 길고도 긴 버스여행의 끝에 있었
고, 딜라이라마의 망명지이기도 하다.
다름살라는 높은 산지대에 위치해 있기에 그 경치의 수려함이 놀라울 정도이
다. 실제 다름살라에서 보다 오기 2~3시간전에 지나치며 보았던 산의 경관
은 "쥐라기 공원"에 나오는 공룡의 섬처럼 신비스럽기 까지 했다.
얼마나 크고 울창하며 가로지른 계곡의 모습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눈으로 자세히 지켜보지 못함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지나는 길에 잠시잠깐씩 눈에 띄는 촌락의 건물위로 사람과 원숭이가 어울려
지내는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풍경이 될거 같다.

다름살라는 날씨의 변덕이 심한 곳이었다.
때때로 2시간씩 비가오고, 햇볕이 쨍쨍한 하늘을 번갈아 보이는 변덕스러움
이 여행자의 마음을 애타게 했다.
딜라이라마의 망명지인 만큼 티벳탄 사람들이 많았고, 인도인들이 오히려
적은 지역이었다. 인도에서도 휴양지로 유명한 곳인듯 많은 인도인들이
휴식을 취하기위해 이곳을 찾았다.
달의호수와 나디라는 히말라야 배경을 볼수 있는 곳이 있으며,
박수폭포에선 계곡에 떨어지는 물결과 멋지게 조화를 이룬 산의 모습을
볼수 있다. 박수폭포물로 목욕을 할수 있는 곳도 있어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수 있었다.
그리고,딜라이라마 왕궁에선 접견을 할수 없었지만, 예불을 드리는 라마승
들의 모습과 중국군에 쫓겨 망명길에 오른 딜라이라마의 뼈아픈 기억들을
담은 박물관 견학이 가능했다.

단편적인 모습들이지만 기억나는 몇가지를 열거한다면,
달의호수라는 곳은 다름살라에서도 산길을 따라 30여분을 올라가면
있는 작은 호수인데, 보이는 것 하나 없는 흙탕물이었다.
왜 그곳이 유적지인지 알수없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여행객들이 던진 먹이에 몰려드는 떼지은 물고기들의 모습이 볼거리가
되었다. 유적지의 뜻을 모르는 이에겐 오히려 산을 오르는 길의 호젓함이
더 여유로운 시간이었을것이다.
조금더 올라가면 나디라는 곳을 만날수 있는데 날이 개였을때의 풍치가
수려하다고 했다. 높은곳에서 탁 트인 먼곳의 산과 계곡 평야를 볼수
있는 곳이니 그 아름다움이 오죽하겟는가?
안타깝지만 비로인해 안개에 끼인 산의 일부만을 보고 내려와야 했다.

박포호수에선 여행온 현지인들과의 아기자기한 기억들이 좋았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길에 럼주를 놓고 술자리를 갖고 있는 인도인들에게
서 럼주한컵에 박포호수로 담은 물을 섞어
단박에 마실수 있는 호의를 누렸다. 그들의 안주와 챙겨온 "자일리톨"
껌을 웃으면서 나눌수 있는 좋은 경험이 기분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서 많은 사람들과 "나마스테" 혹은 "헬로 헬로"
라는 가벼운 인사들과 악수를 가졌다.
경치또한 끝내주었으며, 숨이 턱까지 차느라 잠시 쉬었던 암벽위에서의
짧은 여유또한 잊을수 없을듯 하다.

딜라이라마궁에선 라마승들의 염불이 낯설진 않았다. 불교의 예불과
별반 다를것이 없기 때문이었지만, 그곳으로 가기전 사원에선 맨발로
걸어야 하는 것이 특이했고, 한 서양인이 큰 절을 하며 완전히 누워버리
는 의식으로 몸을 바쳐 기도하는 모습이 신기로웠다.

티벳박물관에선 그 아픈 역사를 되짚을수 있는 기회와 방명록으로 만들어진
종이에 한 소녀가
"Tibet will be free!!"
라고 적은 내용을 눈여겨 보았는데,
한국의 광주항쟁의 참혹한 모습을 떠올렸던 나와 그소녀의 느낌은
어떻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이제 여행 초행길에서 부족함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4일간의 시간동안 인도에 조금더 적응해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곳곳에 숨겨져있는 인도와의 멋진 만남은
한층 더 성숙한 시간들을 만들어 줄것으로 믿는다.

내가 처음 인도어를 알게 된것은 "나마스테(안녕하세요)"라는
단어였고, 인도를 도착한 후 알게된 단어는 "짤로(가라)"라는 말이었다
어딜가든 귀찮을 정도로 따라 붙으며, 미네랄워터와 재주를 보이며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관심없음을 보이기 위한 말로 "no!!" 나 "짤로짤로"
라는 말로 그들을 쫓는 법을 알게 된것이다.
무관심으로 일관할수도 있지만, 어느새 나는 그들과 멀어질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처음으로 알게 된것이다.

동행한 친구는 델리에서 슬픔을 느꼈다고 했다.
문명의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인도가 영국식민지를 거쳐 피폐하고
망가진 나라로 전락한것은 아닌가 하는 이야기였다.
수도 델리에서 끊임없이 "할로 할로" 를 외치며 손을 벌리는데 익숙
해져 버린 아이들에게서 그들의 미래가 불완전할 것이란 정서적인
슬픔을 친구는 가져버린 것이다.
그것은 위대한 나라 인도가 몇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기득권이 있는
세습적 계층구조로 인하여 복구될 수 없을 정도의 문화적 경제적 고립을
겪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과도 맞물려 있는듯 했다.

나는 조금더 인드를 가까이서 느껴보기로 했다.
인도에서 느꼇떤 알듯모를듯한 나의 슬픔은 이방인들에게 익숙해져 버린
인도인들에게 느꼈던 것인데, 쉽게 말로서 표현하기엔 아직은 구체적이지
못한 혼돈된 상태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제 내일은 다시 여정을 떠난다.
암미차르로 가서 황금사원을 보고, 잠무를 거쳐 스리나가르를 통해
고산지대인 레로 향하게 될것이다.

여행이 거듭되는 동안 보다 구체적인 인도를 경험하고, 나자신과
인도인들의 삶을 이야기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보며,
"No problem" 과 인도에서 처음 배운 "짤로 짤로"라는 말이 주는
의미를 좀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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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풍경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2-10-1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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