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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기행3] 인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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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하늘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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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제목 : 하늘풍경의 인도기행 “인도로 떠나니 내가 보이네”

소제목 : ■ [하늘풍경의인도기행] 인도는 없다

인도란 나라를 어떻게 기억하냐고 묻는다면 어떤 이야길 할 수 있을까?

유년시절을 거쳐 청년시절이 될때까지 내 기억에 인도는 어떤 신비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로 기억되었다. 대략 생각해본 단상들을 짚어보면
사원들이 주위에 빼곡히 늘어서있고, 그 곳엔 자국인과 외국인들의 순례
행렬이 끊이지 않으며, 터번을 묶은 사람들이 거리를 다니고, 거리 곳곳엔
요가를 행하며 도를 닦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대식의 차량은 거의 볼수
없고, 코끼리와 소, 말등의 가축등이 교통수단으로서 이용되며, 관광객들에
겐 이를 여행의 즐거움으로 제공해준다. 거리 풍경의 볼거리 중엔 피리를
부는 터번을 머리에 감은 콧수염난 아저씨의 장단에 코브라가 상자에 나와
춤을 추어댄다.

기억속에 감추어졌던 막연한 인도에 대한 환상은 내가 인도여행을 계획
하면서,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좀더 현실감있는 인도의 모습에 가까워
질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참고로 읽은 책이나, 여행자의 기행문
속에 인도에 대한 막연한 느낌은 아직도 그 신비로움의 전통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다름살라를 떠나 파타곳이란 경유지를 거쳐 암뮈차르에 당도했다.
파탄곳까지 약4시간 정도가 걸렸으며, 암뮈차르까진 5시간정도가 소요되
었다. 이곳을 오는 동안 일반 서민들이 타는 로컬버스(인도의 버스등급은
디럭스,세미디럭스,로컬버스,미니버스등으로 나뉠수 있다)를 타게 되었는데,
파탄곳에서는 말로만 듣던 '만만디'의 버스를 만나게 되었다. 출발시간이
4시였는데, 로컬버스엔 나를 비롯한 5명정도의 외국인만이 승차해 있었다.
버스기사는 낡은 트럭같은 버스의 앞문을 열었다 젖혔다하며, 오갈뿐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더운 날씨에 기다려도 오지 않는 기사와
갈길바쁜 여행객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 싹트지만, 기다릴 뿐 뾰족한 방법이
없다. 4시 30분을 넘어선 시간에 더위에 지친 한 외국인이 버스사무소에
가서 항의를 해보지만, 곧 출발이라며 'no problem' 이라는 소리만을 듣고
왔을 뿐이다. 차 출발은 5시가 되어서야 이루어졌으며, 인도의 기차 및
버스 배차시간은 코리아타임에 인디아타임을 합할 만큼 고무줄 늘이기
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로컬버스를 타니 현지인들이 많이 타며, 이방인들을 신기한듯 쳐다보기도
하고 방긋방긋 뜻모를 미소를 짓기도 한다. 지나면서 한번씩 정류장이
아님에도 정차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마다 달라붙는 코코넛열매나
미네랄워터(물), 각종 튀김류의 음식, 전통악기등을 들고 있는 소년이나
사람들과 꼭 한손에 아이를 들쳐메거나 장애인임을 강조하며, 구걸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걸로 봐서는 버스의 컨덕터(버스의 정차 및 좌석배정,
버스비등을 관리하는 책임자)가 나름대로 배려를 해주는 거 같다는 인상
을 받게 된다. 재밌는 것은 이들의 버스 체계가 그 책임권한이 다르긴
하지만, 70년 80년대의 버스 안내양제도와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고,
버스에 올라타 볼펜과 수첩을 파는 인도인을 만났을땐 그야말로 웃음이
먼저 나올수 밖에 없었다.

암뮈차르는 시크교도들이 많은 지역으로 '황금사원'이라는 볼거리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지역마다 특색이 강한 인도의 경우는 종교적
인 성향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이곳에서 느낄수 있는 것은 남자들의
강인함과 여자들의 당당함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힌두교가 활성화된
지역에선 여성의 노출이나 사회생활이 제약을 받고 튀는 행동들이 극히
자제되는 편인데, 이곳에선 여성들이 스쿠터를 타고 다니거나 이방인에게
말을 거는 대범함을 느낄수도 있다.
시크교도들은 머리를 깎지 않기때문에 터번을 둘러 머리를 감싸고, 수염들이
성성하게 나 있으며, 육식을 해서인지 체격이 좋았다.

암뮈차르에서 숙소를 잡고 저녁10시를 넘긴 늦은 시간이었지만, '황금사원'
을 찾았다. 사실 사원이라는 말과 '황금' 이라는 과장된 단어에 별반 기대를
하지 않고 찾았는데, 생각보다 그 주변의 기운은 엄숙했다.
일단 이방인이더라도 신발을 보관소에 맡겨야 했고, 머리를 모자로 눌러써
맨머리를 내보이지 않아야 했다.
들어가는 입구엔 시크교도가 형식을 제한했고, 들어가는 시크교인들을 따라
가보니 우선 손을 씻고, 들어가기전 발을 닦은 후 입구로 향했다.

입구로 들어섰을때의 당황스러움이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둥근 원형에 가운데 호수를 만들어 놓고 그 정점에 황금칠을 한 사원이
들어서있다. 물은 고요히 흐르고, 한밤에 달은 덩그러니 떠 황금의 사원을
비춰주니 그 형형한 빛깔이 놀라움으로 다가선다.
교인이었다면, 경배의 입맞춤을 곳곳에 하지 않고 서는 들어서지 못할
경건함이 배어있는듯 했다.
이방인의 마음 역시 한없이 고요함으로 물결 치는거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원형사원 안쪽에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편안하게 누워있
기도 하며, 시크교도 중 성직자인듯한 사람들이 자리잡은 방 앞에서 기원을
드리기도 한다. 바닥이 대리석으로 깔려 있어서 맨발의 느낌 또한 정갈하고
깨끗한 느낌으로 다가섰고, 무엇보다 사원을 통하는데 요금을 징수하지 않고
물과 점심,저녁 그리고 잠자리를 제공해준다니 그 신성한 믿음이 더욱
깨끗하게 여겨지는 곳이었다.

한곳에 자리를 잡고 눈을 감은후 잠시의 명상을 해본후 이곳저곳 둘러보기
시작했다. 일단의 지긋한 시크교도들의 좌담에 끼어 알아들을수 없는 말들
을 몇몇 단어의 영어를 토대로 이야길 나눠보기도 하고, 교인 만이 칠수
있다는 북을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기도 해본다. 사진을 찍을땐, 어느새
몰려든 시크교인 가족들의 사진을 찍어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물리쳐야 했다.

암뮈차르의 '황금사원'을 시간제한으로 들어가지 못한채 나왔지만,
밤의 황홀한 기억은 잊혀지지 않을거 같았다.

다음날 황금사원 안을 들어가기 위해 다시 찾았을땐, 햇빛이 흐리고
비가 조금 오는 오전이었다.
똑같은 모습으로 그대로 변한 것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건만,
그 빛은 어제의 그 황홀한 사원은 아니었다. 뜨거운 태양에 비추는
황금사원이 또다른 모습으로 기억에 남는 다는 말을 뒤로하고 사원을
나서 스리나가르를 가기 위한 잠무행 버스를 타야했다.

황금사원안에는 옛 시크교인들이 수난을 당했던 모습과 그들이 숭배하는
성인의 모습이 그림으로 남겨져 있다. 그들은 총이나 칼등의 물건을 귀하게
믿는듯 했고, 성인의 모습은 흡사 예수그리스도나 부처님의 일화와 다를
바 없었다. 많은 종교의 모습을 보면 그 흡사한 점을 자주 발견하게 되는
데 종교의 근원은 하나요 사람들의 생각은 다수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게
된다.

잠무를 거쳐 스리나가르를 가는데는 1박 2일의 시간이 걸렸다.
디럭스버스를 탔지만, 15~6시간을 버스 안에서만 지낸다는 것은 쉬운일은
아닐듯 싶은데, 인도인들은 잘 견디고 잘 참아내는거 같다.
연착이 되어도 그저 기다릴뿐이며, 버스길에 소변이 마려운 사람이 있으면
그냥 세워주기도 하고, 길가던 친구를 만나도 버스를 세우고 이야기를 나눈
후 갈길을 재촉하곤 한다. 그들을 보면 태평한것 같은 생각이 드는건
아마도 그들의 이런 생활 환경에서 나오는거 아닐까란 생각을 해보게 되는
건 비단 이런 부분 때문만은 아니다. 교통의 무질서가 상상외로 심한
인도에서 그들이 싸우는걸 보기가 쉽지 않다. 한국에서 라면, 벌써 욕과
삿대질로 범벅이 되어도 족할 사안이 되도 그들은 서로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적이 없다. 물론, 차량의 낡은 부분도 한몫 하겠지만, 그들 나름대로
배인 교통수단에 대한 지혜가 아닐까 싶었다.

버스가 늘상 '만만디'인것은 아니다.
일단 출발할때의 일정치 못한 시간이나 중간 중간 아무때고 서는 부분을
빼면 지역과 지역간을 잇는 6시간에서 16~8시간이 걸리는 버스길은
곡예와 가깝다. 내가 가고 있는 북인도의 일정은 산악을 걸친 지역이
많고 그 지대가 고산이기 때문에 아슬아슬한 산길을 많이 다녀야 했는데,
그 길에서도 좀체로 속도를 늦출줄 모르는 신기의 기술(?)을 발휘하곤
한다. 멈추면 언제 떠날지 알수없건만 일단 출발하면 몸을 맡기고,
그저 도착점을 기다리는 것이 상책인 것이 인도의 시외버스타기라고나
할까?

스리나가르 까지의 긴시간동안 여러번의 검문이 있었다.
여권의 기재사항을 지역을 지날때마다 적어야 하는건 잠무&카시미르 지역이
파키스탄과의 분쟁지역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회교와 힌두간의
분쟁이 언제 촉발될지 모르는 지역이라 군인들의 모습이 곳곳에 눈에 띈다.
그러나, 여행자에게 여권을 제시하는것 이외의 큰 불편이 없음은 이들이
큰 관광수익원임을 인식하는듯 했다.

스리나가르에 도착해선 악명높은(?) 하우스보트의 알선꾼들을 만나야 했다.
정신없이 쏟아내는 이들에게 잘못 걸리면, 바가지는 물론 정신적인 고통을
겸비해야 된다고도 한다.
하우스보트는 2미터 깊이의 강가위에 세워져 있으며, 시카라(5~6인용의
작은배)를 이용해서만 교통수단이 될수 있다. 흥정에 따라 값이 춤을
추기에 여행자들이 긴장을 하며, 방을 구하는 곳이기도 하다.

N하우스보트를 흥정끝에 나쁘지 않은 가격으로 정했다.
방엔 아침 저녁식사 제공이 포함된 가격으로 이곳을 통해 시카라유람 및
파할감이나 굴마르그의 히말라야산악을 바라다볼수 있는 산야의 트레킹을
정할수 있다.

하우스보트는 여유롭게 즐기기에 좋은 시설을 갖추었다.
물위에 떠있는 느낌 외에도 영국식 별장의 맛을 보트에 옮겨 놓은것이다.
강을 바라다볼수 있는 발코니와 TV와 오디오가 거실에 갖춰져 있고,
안으론 주방이 있어 그곳 하인들의 대접을 받을수 있으며, 안으론 침실과
욕실을 갖춘 방이 있어 지내기에 불편함이 없게 되어 있다.

한낮의 시카라 유람도 여유로웠지만, 밤에 발코니에 앉아 차한잔과
강의 야경을 바라보며 앉아있으면, 나와 일행의 모습이 어느던 애니메이션
의 한 장면이 되어 현실과 혼동스럽스럽기까지 한 느낌을 받을수 있다.
하루 하루 늘어나는 비용을 감안한다면 여행자의 마음이 편할리 없지만,
이런저런 속세의 느낌을 지우기만 한다면, 그 그윽하고 깊이 있는 여유로
움을 맛보기엔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다.

스리나가르에선 여행자라기 보다 관광객의 모습을 더 많이 지니게 된듯
하다. 색다른 경험을 해보기 위해 '파할감'의 말 산악 트레킹을 시도해
본 것이다. 철저하게 현지에 적응하기엔 여행의 경험이 짧은 탓도 있지만,
히말라야의 설산을 바라다볼수 있고, 말을 타볼수 있으며, 자연경관의
묘미가 담겨있다는 코스를 저버리기엔 기회가 너무 아까웠기에 1박2일의
코스를 당일코스로 조정하여 다녀오기로 하였다.

'파할감'에서도 말트레킹 매니저의 약간의 농간(?)에 당황해야 했다.
관광지여서 피할수 없는 것인지 산악 말 트레킹이 예정되었던 반나절의
일정을 단지 30분을 주변평지의 사원을 돌아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몰이꾼의 이야길 듣게 된것이다. 일행의 항의에 지금이 순례철이라
산으로의 입산이 금지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매니저에게 그렇다면
철수 하겠다는 엄포를 놓아서야 잠시 말을 탔던 30분의 여정을 빼고,
2시간동안 다녀올수 있는 산악코스로 다시 일정을 조정하여 올라가게
되었다. 내용이야 어찌되었건 보기에 안쓰러운 말들을 타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우려했던것과 달리 내 몸에 탁붇는 말안장은 별다른 아픔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달릴수 있는 기량(?)이 없음이 아쉽게 여겨졌다.
말몰이꾼의 인도로 일행의 말들은 산을 향했고, 그 길을 가는 동안
예전의 몽고인들은 말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산악을 넘었다는데,
그 어려움이 오죽했을까 하는 마음을 가져보았다. 이 땅을 가지기 위한
수없이 많은 말들이 이 산을 넘어 진군을 하며 퇴진을 거듭했을진데,
말을 타고 뒤틀거리는 산길을 오르다 보니 그 힘든 여정이 눈에 그려지는
듯 했다. 1시간 가량의 오름길을 오르고 나서 만난 곳은 초원이었다.
올라온 길과는 전혀 색다른 이색적인 초원이 펼쳐져 있고, 그곳에
소떼와 양들 그리고 목동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멀리 히말라야의 설산을 볼수 있었고, 말몰이꾼의 호의로 말을 달려보는
호사도 누려보았다. 일행과의 달리기 시합으로 곳곳에 산재되있는
소똥을 용케도 피해 엎어져 구르기도 했는데, 그 모든 것이 기억 속에
차곡히 쌓이는 추억의 그림이 될거 같다.

스리나가르의 밤이 다시 찾아왔다.
이제 인도의 탈리와 커리의 맛을 조금 보았을 뿐이다.
인도의 음식을 먹다보면, 먹을땐 배가 부른 느낌이건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허기진 느낌을 피할수 없는데, 탈리와 커리를 먹고 난
후의 허기짐 처럼 알수없는 허함이 찾아든다.

현재의 내가 있는 인도는 더이상 상상속의 인도가 아니다.
다종의 종교가 혼합되어 있고, 인종역시 혼재되어 있는 상태이며,
일부는 자치권을 보장 받으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지역색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다. 많은 외국인들로 인해 그들의 상업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지극히 종교적인 고리를 가진 국가이면서, 상업적인 간교함(?)이
성행하는 나라가 되었다.
초행 여행자들이 가는 대다수의 관광지에선 더이상 물품이 없어 고생하거나
숙박시설등으로 인한 불편함은 많이 사라졌고, 교통편 또한 다양화된
상태로 한국의 70년대 80년대 정도의 생활수준을 생각하면 될듯 싶다.
10억을 육박하는 인도 인구와 남한의 33배의 땅덩어리를 생각할때
모든 문화가 그렇다고는 할수 없지만, 비교적 남부에 비해 열등한 생활을
하고 있는 북부를 생각해보면, 더이상 신화적인 인도의 모습을 찾기는
어려울듯 싶다.

다양한 자연의 변화를 한몸에 가진 인도는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풀한포기
없어 보이는 높은 고산의 아름다움을 가진 나닥(레)지역이나 초록풀빛 가득
한 아름답고 풍성한 산야를 가진 스리나가르,마날리 등의 지역, 그리고
자이살메르나 푸쉬카르등의 사막과 봄베이, 캘커타등의 항구도시, 지역적으로
문화적 관광지로 각광받는 바라나시,아잔타,아그라등과 남부의 풍요롭고
깨끗한 지역등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있는 삶들은 새로운 자본의 물결에 전통적인 사고가
혼재되어 있는 혼란스러움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여전히 수면위에
떠오르지 않는 잠재된 의식으로 감추어져 있다.

인도의 관광지를 거닐다보면 이제는 쉽게 한국인과 외국인들을 만나게
된다. 현지 인도인들의 '안녕하세요'란 말도 곧잘 듣게 되며, 뉴델리에선
'김치하우스'라는 김치볶음밥이나 그밖의 요리등을 한글로 써놓은 식당
등도 볼수 있게 되었다. 교통편 숙박 생활필수품 가전제품 그리고 한국에
버금가는 시설을 갖춘 영화관까지 이제 인도를 찾아 온 사람들의 마음엔
전통적인 인도의 모습은 곳곳에 남은 흔적으로 느낄수 있을뿐, 더이상
상상으로 느끼는 인도는 사라지고 없다. 간혹 만나는 여행자들의 말처럼
인도를 떠나 자국으로 돌아갔을때 느끼는 인도에 대한 향수만이 남았다고
나 할까?

인도는 없다.

내 사고 속에 잠재되있던 막연함은 이제 현실의 인도를 받아들이고
적응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 있을때와 다를바없는 사람들의 모습과
생활을 통해 인간의 삶의 통일성을 느껴보게 된다.

여러가지 환경에 따라 변화된 유형의 삶은 있을지라도, 그 안에 숨쉬는
사람들의 사는 모습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밝힐수 밖에 없는 사실은 내 짧은 여정과 짧은 시야 그리고 그들과의 언어
소통의 한계로 인해 좀더 근접한 삶의 모습을 얻기는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것이다.
이제는 여행자로서 이방인으로서의 바라보기를 인정하며, 인도에 다가서
보기로 했다.

아직도 길은 많이 남았고, 난 단지 탈리(인도의 전통음식으로 밥과 소스,
그리고 짜파티라는 밀가루로 된 동그란 부침이 나온다)의 짜파티를 조금
배어 물었을 따름이다. 오늘의 생각은 내일과 같지 않을수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며, 이제 척박한 토양의 3500미터의 산악에 사는 고지의
나닥키(레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들을 만나러 떠난다.

스리나가르에 온것보다 더 험한 고산병과 어려움을 느끼는 곳이지만,
몽골리안의 피가 섞인 이들이 주로 사는 그곳에 있는 이들의 아픔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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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피디에게>>

위의 일정은 8월1일까지의 일정이다.
소남마르그(경유)->카르길(경유)->레->킬롱(경유)->마날리->뉴델리
의 일정이 오늘 8월 10일까지의 일정이라 쓰려고 했는데,
이야길 풀어놓다보니 길어졌다.
뉴델리 까지의 일정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될거 같고,
이제 가는 일정이 겹치니 내용을 봐서 부분적으로 피력한다던가
하는 방법을 써야할거 같구나.
늦은 원고는 고산지대에 내려온 날이 얼마 안되어 그렇게 된것이고,
다음주 중에 한꼭지를 더 써서 보내도록 하마.
부족한 점이나 원하는 부분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길 바란다.
참고해서 적도록 할것이고, 여행 에필로그에 여행 경로와 짤막한 이야
기등을 적고 자세한 일정내 이야기는 내 홈과 연결되도록 해보마.

그리고, ktdom에서 내 글의 폰트가 뭘 쓰고 있는지 좀 알려주고,
그 폰트체를 webfri.com 의 자료실에 올려주면 좋겠구나.
이곳에선 일반 폰트체가 아니라서인지 글이 다 깨져서 제대로
올라갔는지 확인할수가 없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고, 다음 원고에서 다시 안부전하마.
건강하고 즐거운 시간 되길....

인도 뉴델리에서 하늘풍경 :-)





* 하늘풍경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2-10-1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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