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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기행4] 나닥을 가다 (1) - 척박한 토양에 피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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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하늘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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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제목 : 하늘풍경의 인도기행 “인도로 떠나니 내가 보이네”
>
>소제목 : ■ [하늘풍경의인도기행] 나닥을 가다[1] - 척박한 토양에 피는 꽃

잠시 숨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다 보았다.
이 높은 고지에서 보이는 밤하늘이란 너무 평온하기만 하며, 그 별의
반짝임은 나그네의 먼 길을 보듬어주듯 위안과 평화를 안겨다 준다.
그 하늘엔 파아란 구름이 한낮의 여운을 못잊어 고스란히 그 빛을 감춘채
남아있다. 구름의 윤곽에 흐르는 별무리와 환한 웃음의 달은 손 발이 부르튼
삶 깊은 눈매에 주름을 가진 농경에 젖은 아낙과 노인네의 웃음을 닮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여유를 갖는 이 가까운 평화로움이 여행자의 한껏
고무된 아름다움만은 아닌지 깊은 한숨을 내뱉어 본다.

스리나가르를 거쳐 소남마르그에 도착했다.
레로 가는 1박2일의 교통편은 하루에 단한번 출발하는 버스편이기 때문에
출발전에 신중한 결정이 필요했다.  우리 일행은 상의끝에 평화로운 관광자
가 아닌 여행자임을 상기하며, 모험이 되더라도 소남마르그 까지 버스편을
이용한후 레로 가는 트럭을 히치(트럭을 얻어 타는것)하여 가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하였다. 3500미터의 고산지대에 위치한 레는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고산병의 위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심하면 두통과 구토
증세에 여러가지 합병증을 가질수도 있다고 전해졌기에 일행 중 일부는
포기했고, 젊은 사람들만이 예정대로 레로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소남마르그에 도착하여 한숨을 쉰 후 산야를 둘러보니 멀리 하얀 설원의 산
이 눈에 들어온다. 황망한 황토빛 척박한 산과 초원에 쌓은 산을 두루 볼
수 있는 위치에서 잠시 천혜의 자원을 가진 인도의 다양한 모습에 경탄했다.

막상 도착해보니 트럭히치가 불법이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난감했지만 일행은 일단 예정대로의 모험을 해보기로 뜻을 모았다.
산야의 경치도 구경할겸 산악트레킹(산의 경치를 보며 걸어서 오르는 것) 처럼
걸어보다가 중간에 트럭이든 버스든 방법을 강구해보기로 한것이다.

더운 날씨였지만 주변의 경관이 힘을 북돋아 준다.
무거운 짐을 지고 앞일을 내다 볼수 없는 걸음을 힘차게 걸었다.
소남마르그의 천막촌을 뒤로하고 10여분 정도 걸었을때, 군인 두명과 부랑민
들이 보인다. 
잠무&카시미르 주의 경우 파키스탄과의 분쟁지역이기 때문에
간헐적인 테러로 인한 총성과 인명피해가 있는지라 군인들을 많이 볼 수 있어
별 생각없이 지나쳐 가려 하는데, 우리 일행을 손짓으로 부른다.
혹시 트레킹을 문제로 삼는건가 싶어 긴장하고 곁에 가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일행을 보며 씨익 웃는 군인은 'photo, photo' 하며  부랑민들을
가르키는 것이다.  상황을 보니 그들과 사진을 찍고 가라고 큰 배낭에 힘겹게
걸어가는 우리를 불러 세운것이었다.  어이없기도 했지만, 여행중의 에피소드라
웃으며 사진을 찍은 후 갈길을 재촉했다. 

15분여가 지났을까? 운 좋게 한대의 트럭을 잡을 수 있었다.
발탄까지 가는 것이었지만, 첫 히치의 기쁨을 만끽하며, 일행들 모두 꽉
찬 자리를 비집고 들어갔다. 자리가 여의치 않아 트럭 뒷자리의 난간에
올라선 나는 한껏 불어오는 바람과 주변의 구비구비 돌아가며 벌어지고
맞닿는 산야의 절경을 맘놓고 볼수 있었다. 지나온 길을 힐끗 돌아보며
되새기고 되새기는 영상은 모두 담아둘수 없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한시간 가량이 걸린후 트럭에서 내려 또다시 산길을 걸어야 했다.
더운 날씨에 큰 짐들이 부담이 되고 고산지대라 숨이 차 오는 것이 느껴진
다. 한걸음 한걸음이 제법 무겁게 여겨진다.

저 아래 발탄마을이 보였지만, 레로 가는 중간 경유지 까르길로 향하는
고개길로 무작정 걸어보기로 하였다.  한시간 가량을 걸었을까?

주변엔 황토색 흙이 산을 수놓았고, 듬성 듬성 작은 나무만이 산이라는
흔적을 보여줄 뿐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나는
차도 없는 것이 마음에 한점 불안을 느끼게 한다.  지나던 기술공 한명이
70km 내엔 마을이 없다는 황망한 소식을 전해주며, 3시경이면 차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주었다.

일단 내친 걸음으로 일행을 독려하여 한시간 반 가량을 이런 저런 가요들
을 흥얼거리며, 멀리 설산과 구비 구비 돌아가는 뒷길을 배경삼아 걸어 올
라갔다.  3시경이 다되었을 즘엔 그늘목을 잡아 지친 몸을 달래며, 지나는
버스를 기다려 보지만, 30여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인도에서 배인 습성이 그저 기다리는데 익숙해졌는지라, 일단 더 버텨보자며
기다리니 저 밑에서 부터 군부대의 차량들이 올라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산이 험하다보니 오르내리는 차들의 시간을 통제하는 것임을 나중에야
알수 있었다. 다행히 지나는 세미디럭스 까르길행 버스를 타고 레로 한발짝
더 다가서는가 싶었다.

3600m의 고도를 가진 조지라 고개를 넘기전에 작은(?) 불상사가 생겼다.
길게 줄지워진 30여대 트럭이며 버스가 멈춰서버린 것이다. 영문을 몰라
나와보니 낙석이 떨어져 치우는 중이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근처에 아무것도 없는 고산에서 밑도 끝도 없이 기다려야 하는 그 잔인함을
이곳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저마다 모포를 둘러쓰거나 잠자리를 잡는
것으로 고산의 매서운 바람과 그늘의 차가움을 피하고 있었다.

햇살은 뜨거운 오후임에도 고산의 바람은 차다. 아래론 까마득한 낭떠러지
가 보이고, 눈 밑에 퍼덕이는 새가 더이상 높이 날으지 못하는 웃지못할
광경을 보여준다.  추위에 떨며, 주변 사람들에게 언제나 가냐는 물음을
던지고 싶지만, "no problem"의 대답이 될것임을 알기에 그저 기다려본다.

기다리다 지친 같은 일행 친구가 산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까마득하게
보이는 모습에 자연을 배경으로한 사진을 찍어 주었고, 버스가 떠날때 쯤
숨차게 올라온 친구의 손엔 풀한포기 없는 곳에 핀 이쁜 꽃이 한송이 피어
있었다며, 내게 보여준다.

세시간이 지나서야 갈길을 재촉할 수 있었다.
거의 곡예에 가까운 신기(?)의 운전술을 발휘하며, 이리저리 장단에 맞춘
몸을 버스에 맡긴채 자정이 되서야 까르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까르길에선 K호텔에 묵게 되었다. 말이 호텔이지 부랑자들의 숙소들 같았
지만, 새벽 4시30분 출발하는 버스시간을 감안하면 잠시 대기 하는 장소에
불과하기에 일행 다섯명이 한방을 잡았다. 두개의 방을 잡으려 했지만,
침대가 없는 방은 서울역의 역사보다 못한 모포 한장에 난민숙소를 방불케
해서 밤을 새는 쪽을 선택하고 싶을 정도였다.  더블베드의 방에선
네명이 침대위를 쓰고, 내가 매트를 한단 깔은 바닥에 침낭을 덮고 자기로
하였다. 4시간 후면 벗어날수 있다는 희망으로 잠을 청했는데, 이날의 잠은
내 온몸에 질기디 질긴 벼룩의 흔적을 남겨주었다.

까르길을 거쳐 레로 가는 길은 풀한포기 없는 척박한 산맥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가끔 오아시스처럼 녹색의 풀들이 난 지역들도 간간히 보였지만,
대부분의 토양이 풀없는 황토사막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곳을 지나다보면 옛 티벳왕궁의 터가 남아 옛 영역의 흔적을
보여주고, 도저히 살아가기 힘들거 같은 곳에 둥지를 틀고 사는 티벳탄과
비슷한 모습을 가진 나닥키(나닥지역의 사람들을 일컬음)들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까르길에서 레로가는 버스엔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닥키들로 고산지대의
영향인지 티벳이나 중국인의 얼굴에 눈이 부리하게 크고 약간 돌출된 듯한
느낌의 사람들이 많았다. 나닥키들이 네 계열의 민족이 혼합되어 오랜시간을
걸쳐 독특한 나닥키라는 별칭의 사람들로 불리워진다고 하더니 외형에서도
어렴풋한 분간이 가능했다.

1박 2일의 시간을 거쳐 레로 근접해가면서, 그 주변의 모습을 다시금
새겨보게 되었다. 이런 고지대에 사는 나닥키들은 인도인과는 또다른 모습
으로 자신들의 지역을 밑바탕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것인
가 하는 것이었다. 과연, 자신을 인도인으로 생각하고 있을런지 하는 의문
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다.

책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나닥지역은 잠무&카시미르주에 속해 있으며, 끊임없이
독립된 주로 승인해 줄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았다. 카시미르가 잠무와
는 별도의 주로 승인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독특한 고산지대의 삶을
영위하며 그 문화적 성향도 판이한 나닥키들 역시 정부의 행정이 카시미르
주 형태로 이익들이 배분되면서, 자신들의 권익을 찾기위한 노력으로 분리
된 주의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에서 이루어지는 행정역시
정치적인 이익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라 나닥키들의 소망은 단지 소리없
는 메아리일뿐 그 이상의 진척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모습이 한국인과 비슷해서인지 우선은 친근함을 갖은채 바라보게
된다. 우리네 할아버지 처럼 나닥키 노인들의 깊이 패인 주름섞인 눈은
한없이 선량해 보이고, 노인의 눈에 아이를 바라보는 친근한 웃음이 그저
좋아 보인다.  나닥키들 역시 다인종이 섞여 있기에 꼭 이들만이 있는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슷한 모양새의 사람들에게 좀더 호감을 갖는건 어쩔수
없는 마음이다.

버스가 레로 들어섰다.
척박한 곳에 어찌 이런곳이 형성되어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인더스강의 줄기를 따라 구비 구비 돌아온 길에 있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
레의 모습이다. 대부분의 집들이 토담처럼 황토빛을 하고 있고, 옛 티벳왕궁
의 터가 남아 있는 곳이지만, 시내로 들어가면 제법 바자르(시장)와 관광
시설 그리고, 편의 시설등이 여느 관광지 못지 않게 갖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엔 무수한 외국 관광객들에 섞인 나닥키들이 있다.

친구의 손에 들려진 척박한 토양에 피었던 꽃 한송이와, 버스 차창의 시선
으로 들어오는 나닥키들의 터전과 모습이 자꾸 겹쳐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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